미즈시로 세토나, 라고 쓰고 S토나라고 읽어줘야 마땅할 [쥐는 치즈의 꿈을 꾼다]의 작가가 모바일 연재를 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어찌어찌 잡지본 '우울, 버터플라이'는 봤고, 그 뒤의 '올빼미' 4편은 연재가 끝났으나 아직 단행본화되지는 않은듯하며 '도마위의 잉어는 2번 뛴다'는 현재 8편까지 연재중이란다.
그렇다.
이 여자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정말 자기 시리즈 중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해피엔딩으로 맺은 단행본 1권 이야기를 꼬고 꼬고 또 꼬아 정진정명 처절계 인간극장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 주제에, 바다 건너 사는 독자들은 볼 방법도 없도록 모바일로 연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삼중 사중으로 S한 양반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 정교한 사악함에 마땅히 매컷마다 독자의 절규 겸 감상을 써 응수해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시간은 없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이 사람이 그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BL만화가 아니다. 아니, 장르상 BL은 BL인데 이건 뭔가 좀. 수준이 달라. 서가에서 한권 뽑아 같은 돈 4000원을 내고 사면 작가의 능력을 모욕하는게 될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전에 어디서 이 작가에 대해 '슬픔'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표현한 걸 봤는데, '슬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처와 고통, 내적 혹은 외적인 상실을 경험하며 망가지는 정신세계에 특화되어 있다는게 더 적합할 것이다.
그걸 총체적으로 '슬픔'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클릭ㄲ(미리니름 별로 없지만 있음)
작가가 나를 말아 먹으려고 작정을 했지. 인간과 인간, 아니 결코 동등하지 않은 연인과 연인의 관계, 그 격차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을 이렇게나 철저하고 적나라하게, 그러나 결코 천박하거나 과열되지 않게 드러낼 수 있다니. 취향이라는 이름의 과녁에 활시위를 당겨 카메라를 깨먹을 인간아. 까먹을만 하면 나타나서 이렇게 취향에 직격하는 걸 낼름 내놓으면 나는 어쩌라고. 그래, 뭐 나는 그렇다고 쳐. 나는 어쨌든 당신 작품 밖의 독자 A, B, C 일 뿐이니까. 어쩔거야. 응? 이마가세 어쩔거야. 얘 얼마나 더 불쌍하고 처절하게 만들래, 응?
내가 진짜 살다 살다 BL만화에서 이렇게 처절하게 안기는 ㄱ(...ㅅ? 애초에 난 이마가세가 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긴 한데 지금까지 포지션 상으로 보면 ㄱ은 ㄱ..근데 ㅅ..) 처음 본다. 평균적인 BL만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대개 코미디거나 더할 나위없는 과장적 연출의 산물인 경우가 많단 말이지. 그걸 이렇게 직구로 풀어버릴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지 뭐임.
아니, 난 사람들이 하도 충격의 리버스라길래, 리버스 자체가 충격적이라는 줄 알고 '에이, 부대끼고 살다보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거지, 뭘 또 그렇게 충격적이라고. 음..하지만 미즈시로가 그냥 평범하게 리버스를 시켜줬을리는 없으니...아, 이런건가? 이마가세에게 어떤 남자가 추근대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걸 지나가다가 쿄이치가 봤다든가, 그래서 쿄이치가 질투심을 느꼈다든가, 아니면 또 뭔가 이마가세가 발끈해서 투덜투덜투덜대며 도발하고 있으니까 쿄이치가 한 껀 한건가? 그래, 은근 쿄이치가 성깔이 있어서 열에 한번쯤은 발끈하는 남자다움이 있지. 이마가세...좋았겠네?' 하고 희희낙락하며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다.
근데 이 전개는 기대를 배반하고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기서 (이미 추락할대로 추락한 이마가세가 한번 더 추락해서) 더 질퍽거리는 애증을 그릴 수 있을 줄은 몰랐어..근데 되는구나, 허허허. 쥐치즈와 그 후속편들이 좋은 이유는 너무나 평범한 환경에서, 너무나 평범한 인물을 통해 애증의 비틀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고 방식과 전개라서 그런지 감정이입도 잘되고. 얘들의 어디가 그렇게 평범하냐고 묻는다면...원래 사랑할 때는 다들 반쯤 미쳐있지 않냐는 대답으로 갈음하련다. .(초반에 이마가세가 스토킹한거? 난 그냥 관대하게 이해하고 싶다. 느닷없이 나온게 아니라 10년 기다렸다잖아. 단행본에 다 꾸겨넣을 수 없는 투명인간 세월 10년. 그 정도 특수성은 그냥 개인차라고 본다.)
아, 젠장. 불쌍한 이마가세.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았겠지. 얘들을 보고 있으면 기억도 가물한 개인적인 기억들이 떠올라서 참 견딜 수가 없어진다. 나는 이들 둘 모두를 연민한다.(편애로 이마가세를 째끔 더 연민하지만) 기억 나지도 않는 몇 번의 사소한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서 나는 쿄이치의 무심함을 답습했을 것이고, 몇년이 지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번의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서 나는 내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애정을 쏟아붇는 이마가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내 안에 그 둘 모두가 있기에, 나는 그들을, 그리하여 비로소 나를 이해한다. (내가 참 연애하기 힘든 인물이긴 하겠구나 하는 것도 덤으로 알게된다 젠장ㅋ)
그저 그 둘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는 동성이라는 예기치 않은 특수성에서 비롯하는 동시에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관계의 어려움'에서도 기인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같은 타이밍에 사랑에 빠지는 것도 자못 우주적인 행사일진대, 꼭 같은 정도의 애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축복받은 경우가 아니던가.(세상에 그 많은 연인들은 그 존재자체가 너무나 기이하고 신기하다.)그리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가까스로 좁힌 거리는 너무나도 불완전하여 상대방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무마할 수 없는 차이들-좋아하는 정도의 차이, 성격의 차이, 욕망의 차이, 속도의 차이, 사회적 상황의 차이-이 쐐기처럼 박혀있다. 언제든 벌어져 다시 남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도록 곳곳에. 적법한 말과 행동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일 수 없다는 건 인류의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나, 그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란 쉽지 않다. 미처 꺼내지 못한 말 한마디가 쐐기를 키우고, 적법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박혀있는 쐐기에 물을 붓는다. 어른이니까 몇번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임계점은 있는 법. 찰랑거리는 스트레스가 넘치는 순간 파사삭 하고 깨어져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릴 위험은 언제나 남아있다.
쿄이치는 분명 변해가고 있었다.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이마가세가 있는 현실에, 더불어 그가 종종 내뱉는 독설-대부분 자신의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가까스로 지키기 위한 꽤 처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던-에도.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산삼보다 더 구하기 어렵다는 '영원히 자신만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본의 아니게 그런 사람도 곁에 두게 되었다. 그게 남자라는 것만 제외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텐데. 아니, 그게 꼭 남자라서였을까. 주고받는 애정에 균형이 깨져있을 경우, 상대방이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의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안도감을 주는게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단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끝없이 상대방의 인내심(애정이라는 이름의 족쇄, 흔히 말하는 반한놈이 죄)에 기대게 된다는 것 또한 사실일 뿐.
상대방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이자 상대에 대한 책임전가지만, 어쨌거나 기본적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문제는 그것이 비의도적이었을 경우, 자신의 도피가 상대방의 하해와 같은 애정-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던, 도피를 가능케해주는 '신뢰'의 정체-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여, 그게 꼭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더군다나 같이 부대끼며 살게 된지도 한참이나 지나서 '그는, 나를 (정말로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를 깨닫게 되는 쿄이치의 둔함을 생각할 때, '나를 사랑하는 그는 꽤 사랑스럽다', 가 '나는 그를 사랑한다'로 바로 스위칭되지 않는 건 안타깝지만 당연하다. 그의 둔함은 정말로 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끝없이, 정말 끝없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생각하는 인간들의 후예에 걸맞게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라는 부분은 여기에 해당한다. (통상적인 BL에 등장하는 심플한 사고회로를 따르는 캐릭터가 아니다. 반올림하면 거의 살아있는 인간인듯..)
남자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동성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는데, 절대적인 사랑이라는게 과연 가능할까, 그 많은 여자들도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주지는 못했는데 이 녀석은 가능한걸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는 과연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인가, 저건 사랑일까, 집착일까, 그도 아니면 이 또한 그 안의 환상이자 자기 폭발인걸까, 혹 그게 내가 꿈꾸던 그런 사랑이라면,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받은만큼 돌려주지 못해도 괜찮은 걸까, 아니, 내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에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이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상대방이 주는 편안함과 안온함에 기대어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이 주는 애정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최소한 거기에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닐까, 등등 (새벽 2시가 넘으니 쿄이치가 닥빙된듯..물론 나는 '이 멍청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ㅈ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거야 임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쿄이치 뿐만 아니라 이마가세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래서 이 스트레스 커플은 결코 무난한 방식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충격의 리버스를 겪고도 한 편 더 꼬아야 직성이 풀리는건...그래, 뭐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제발 해피엔딩 좀 해주면 안되겠냐고 엠에센에서 발광을 떨어봤자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몇 마디 공개된 대사로 손에 잡힐듯이 다음 화의 전개를 떠올려보고 나는 그저 다음에 보게 될 쩌는 전개를 기대하며 굽신거릴 뿐이다.
그러니 S토나든, 도S토나든 그저 그려만 주십쇼, 네 ㅠ_ㅠ
(그리고 단행본도 좀 내줘...제발.)
닫기